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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11분 읽기

노벨상을 받은 12페이지 논문이 알려주는 분산투자의 진짜 의미

1952년 25살의 대학원생이 쓴 단 12페이지짜리 논문이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래된 격언을 수학으로 증명했고, 오늘날 모든 자산 배분 전략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으면 정말 안전할까?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는 분산투자 개념 일러스트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는 분산투자 개념 일러스트

어릴 때부터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을 들어왔을 겁니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죠. 그런데 막상 이 말을 실천하려 하면 의문이 생깁니다.

"그냥 여러 종목을 사면 되는 건가? 그게 전부인가?"

사실 단순히 종목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분산투자에는 핵심 조건이 있고, 이것을 처음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해리 마코위츠(Harry Markowitz) 입니다.


25살 대학원생이 쓴 논문이 노벨상을 받기까지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선택 논문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 여정 일러스트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선택 논문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 여정 일러스트

마코위츠는 1927년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석사를 마친 후 박사 주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주식 브로커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지도교수의 권유로 주식 시장을 연구 주제로 삼게 됩니다.

당시 마코위츠는 주식 투자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수학적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52년 발표된 논문 "Portfolio Selection" — 고작 12페이지짜리 논문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훗날 1990년 마코위츠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줍니다. 박사 심사 당시 심사위원이 "이건 경제학도, 경영학도, 수학도 아니다"라며 당혹스러워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분산투자의 핵심: 단순히 '많이' 사는 게 아니다

자산 간 상관성 개념을 나타내는 파동 그래프 일러스트
자산 간 상관성 개념을 나타내는 파동 그래프 일러스트

마코위츠 이론의 핵심은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상관성(Correlation).

상관성이란 두 자산이 얼마나 비슷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값의 범위는 -1에서 +1 사이입니다.

상관성 값의미예시
+1완전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임동일 업종 주식 2종목
0서로 무관하게 움직임주식과 금
-1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임이상적인 헤지 자산

마코위츠의 주장은 명확합니다: 상관성이 낮은 자산끼리 묶어서 투자하라. 그래야만 한 자산이 손실을 볼 때 다른 자산이 이를 상쇄해 줄 수 있습니다.


우산, 아이스크림, 수영복으로 이해하는 상관성

날씨에 따른 우산, 아이스크림, 수영복 주식의 상관성 비교 일러스트
날씨에 따른 우산, 아이스크림, 수영복 주식의 상관성 비교 일러스트

섬나라에 세 가지 주식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 🌂 우산 회사: 날씨가 나쁠수록 잘 팔림
  • 🍦 아이스크림 회사: 날씨가 좋을수록 잘 팔림
  • 🩱 수영복 회사: 날씨가 좋을수록 잘 팔림

여기서 퀴즈입니다. 분산투자 관점에서 가장 좋은 조합은 무엇일까요?

정답: 우산 + 아이스크림, 또는 우산 + 수영복

왜냐하면 날씨가 좋든 나쁘든 항상 둘 중 하나는 잘 나가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이스크림과 수영복을 함께 사는 것은 분산투자처럼 보이지만, 둘 다 '날씨가 좋아야' 수익이 나는 구조라 상관성이 매우 높습니다. 날씨가 나빠지면 둘 다 동시에 손실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종목 수가 많다고 분산투자가 아니다" 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실제 주식 시장에서의 상관성

주식, 채권, 금, 현금 자산군 간의 상관성 네트워크 다이어그램
주식, 채권, 금, 현금 자산군 간의 상관성 네트워크 다이어그램

현실에서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는 자산(-1)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주식 시장 안에 있는 종목들은 업종이 달라도 시장 전체의 흐름에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관성이 어느 정도 플러스(+)로 나타납니다.

  • 같은 업종 주식끼리: 상관성 약 0.7~0.8 (높음)
  • 다른 업종 주식끼리 (예: 보험 vs 반도체): 상관성 약 0.2~0.3 (낮음)
  • 주식 vs 채권: 상관성 매우 낮음, 때로는 음수
  • 주식 vs 금: 상관성 낮음

이 때문에 진정한 분산투자는 주식 안에서만 종목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산군(주식, 채권, 금, 현금 등)을 섞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론이 실제로 얼마나 강력한가: 영구 포트폴리오 사례

영구 포트폴리오 25% 자산 배분 전략과 장기 수익률 일러스트
영구 포트폴리오 25% 자산 배분 전략과 장기 수익률 일러스트

마코위츠의 이론을 실제로 구현한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가 영구 포트폴리오(Permanent Portfolio) 입니다. 미국의 투자 전략가 해리 브라운(Harry Browne)이 설계한 이 전략은 단순합니다.

자산을 4등분하여 각각 25%씩 투자:

  • 미국 주식 25%
  • 미국 장기 국채 25%
  • 금 25%
  • 현금 25%

그리고 1년에 한 번, 비율이 틀어지면 다시 25%씩으로 맞춰주는 리밸런싱(rebalancing, 목표 비율로 자산 비중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 만 해줍니다.

포트폴리오 시뮬레이션 결과(1978년~약 2018년, 40년간):

항목영구 포트폴리오미국 주식 단독
연평균 복리 수익률약 8.1%더 높음
연간 변동성약 7.14%약 2배 이상 높음
최대 낙폭(MDD)약 -13%약 -50% (2008년)
10% 이상 손실 발생 횟수40년간 단 2회여러 차례

이 결과가 놀라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각 자산의 최대 낙폭을 보면:

  • 미국 주식: 최대 약 -50% (2008년)
  • 미국 장기 국채: 최대 약 -23%
  • 금: 최대 약 -62%

각각의 자산은 최악의 순간에 반토막 이상 날 수 있었는데, 이것들을 섞었더니 전체 포트폴리오의 최대 낙폭이 -13%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관성이 낮은 자산 간 분산투자의 마법입니다.

이 네 자산 간의 실제 상관성을 보면 금과 현금은 상관성이 0에 가깝고, 금과 채권은 심지어 약 -0.03으로 거의 무관합니다.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들이 포트폴리오 전체를 지켜주는 구조입니다.


분산투자를 실천하는 3단계

분산투자 실천 3단계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분산투자 실천 3단계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이론을 알았다면 실천이 중요합니다. 마코위츠의 아이디어를 투자에 적용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자산군을 다양하게 구성한다
주식만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우지 않습니다. 채권, 금, 현금성 자산 등 주식과 다르게 움직이는 자산을 포함시킵니다.

2단계: 같은 자산군 내에서도 상관성을 확인한다
주식 안에서도 같은 업종 종목만 모으면 분산 효과가 줄어듭니다. 서로 다른 업종, 다른 국가의 주식을 섞으면 상관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3단계: 정기적으로 리밸런싱한다
시간이 지나면 수익이 난 자산의 비중이 커지고 손실을 본 자산의 비중이 줄어듭니다. 1년에 한 번 목표 비율로 되돌려 주는 리밸런싱을 통해 '비싸진 자산을 팔고, 싸진 자산을 사는' 효과를 자동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활용하세요

투자 상황별 분산투자 활용 시나리오 일러스트
투자 상황별 분산투자 활용 시나리오 일러스트

시나리오 1: 투자를 막 시작한 경우
처음부터 개별 종목 분석에 시간을 쏟기보다, ETF(상장지수펀드, 여러 자산을 묶어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펀드)를 활용해 주식형 ETF, 채권형 ETF, 금 ETF를 일정 비율로 나눠 투자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시나리오 2: 이미 주식만 보유 중인 경우
현재 포트폴리오의 자산 간 상관성을 점검해 보세요. 보유 종목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채권이나 금 같은 비상관 자산을 일부 추가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 3: 시장 하락이 두려운 경우
분산투자의 목적은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변동성 최소화입니다. 수익률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큰 손실 없이 꾸준히 우상향하는 포트폴리오를 원한다면, 상관성이 낮은 자산 배분 전략이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핵심 정리

  • 분산투자의 핵심은 '종목 수'가 아니라 '상관성'이다. 서로 비슷하게 움직이는 자산을 아무리 많이 사도 진정한 분산 효과는 없다.
  • 상관성이 낮은 자산끼리 묶으면, 개별 자산의 위험보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위험이 훨씬 낮아진다. 이것이 마코위츠가 수학으로 증명한 핵심이다.
  • 주식 시장 내에서는 완전한 분산이 어렵다. 채권, 금, 현금 등 다른 자산군을 섞어야 상관성을 의미 있게 낮출 수 있다.
  • 영구 포트폴리오처럼 단순한 자산 배분 전략도 40년간 최대 낙폭 -13%를 기록하며 강력한 방어력을 보여줬다. 복잡한 전략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 리밸런싱은 분산투자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비율을 주기적으로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비싸게 팔고 싸게 사는' 효과를 자동으로 구현할 수 있다.